“여기 공원 자리, 예전에는 공장이었대요” 요즘 도시 재생이나 택지 개발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두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오래된 공장을 허물고 아파트 단지나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도시의 미관과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변화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땅 속에 있는 ‘흙’은 과연 안전할까요?
공장에서 남은 것들 : 보이지 않는 유산
우리나라에는 1960~80년대 산업화 시대를 이끈 수많은 공장들이 있었습니다. 철강, 석유화학, 도금, 전자부품 등 다양한 업종이 전국 각지에 들어섰고, 경제 성장의 심장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공장이 노후화되거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폐공장 부지’로 남아 있는 곳이 많습니다. 문제는 이들 공장에서 사용되던 중금속, 유류, 유기용제 같은 유해물질이 토양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초록 잔디가 깔려 있다고 안심할 수 없습니다. 토양 깊숙한 곳에 납, 수은, 카드뮴, 벤젠, 다이옥신 같은 위험 물질이 스며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시 재개발, 그 시작은 ‘토양조사’
많은 폐공장 부지들은 도시 내 노른자위 땅으로, 공원이나 주거지로 탈바꿈하기 위한 재개발 대상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재개발을 하기 전 반드시 시행해야 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바로 토양오염 조사입니다.
환경부는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공장 부지나 폐기물 매립지 등은 토양오염 우려 지역으로 지정하고, 정밀조사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유해물질이 발견되면, 토양 정화작업을 거친 후에야 건축이나 조경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정화 비용이 수억에서 수십억 원까지 들어가기도 하며, 조사 자체가 생략되거나 부실하게 이뤄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과거에는 이러한 제도가 미비했기 때문에, 이미 개발이 완료된 부지 중 일부는 안전성이 의심되기도 합니다.
생활공간과 가까운 위험
폐공장 부지가 오염되었을 때의 문제는 단순히 흙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하수를 통해 오염이 확산되거나, 오염 물질이 공기 중으로 휘발되면서 주변 주거지역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미시간 주 플린트 시에서는 납 오염된 수도관으로 인해 수천 명의 아이들이 납 중독에 노출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인천, 울산 등 공업지역 인근 주택에서 중금속이 검출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나 노약자, 임산부는 토양 오염물질에 훨씬 더 취약합니다. 흙에서 자란 작물, 놀이터의 흙먼지, 우물에서 끌어올린 지하수까지 일상 속 모든 경로가 오염과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토양정화 기술의 발전과 한계
다행히도 최근에는 토양 정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생물을 활용한 생물학적 복원(Bioremediation), 화학적 산화·환원, 오염된 흙을 꺼내어 씻어내는 토양세척법, 열로 증발시키는 방식까지 다양한 기법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은 비용이 높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또한 완전한 정화보다는 일정 기준 이하로 낮추는 방식이기 때문에, ‘제거’가 아닌 ‘관리’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주변의 오염된 땅들
놀랍게도 우리가 매일 걷는 길,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 심지어는 주차장 아래에도 오염된 토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거 주유소, 세탁소, 금속 가공소, 군부대, 도장업체 등이 있었던 부지들은 대부분 토양오염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부동산 거래나 개발 전, “이곳이 과거에 어떤 곳이었는가?”를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자체나 환경공단의 오염지도, 토양환경정보시스템 등을 활용하면 해당 지역의 토양오염 우려 여부를 미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흙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일
“흙은 말이 없다. 하지만 모든 걸 기억한다.” 한 환경운동가의 말처럼, 흙은 그 위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폐공장 부지도, 누군가의 어릴 적 놀이터이자 앞으로 누군가의 집이 될 수 있는 곳입니다. 개발과 재생이 활발한 요즘, 땅의 과거를 묻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합니다. 안전한 도시, 건강한 삶은 깨끗한 흙 위에서만 가능합니다.
내 지역의 토양이 걱정된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환경부 토양지하수정보시스템 이용하면, 환경부에 등록된 ‘토양환경전문기관’이 실제 조사업무를 수행합니다.
※ 이들은 보통 개발사업 시행 전 환경영향평가, 사후관리, 정화설계 등을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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